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를 꼽는다면 누굴 가장 먼저 떠올릴까.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20세기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보다 큰 족적을 남긴 미술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달리는 1904년 스페인 카탈루냐의 소도시 피게레스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형으로 인해 상심이 컸던 부모는 달리를 죽은 형의 환생으로 여겼다. 이 사실로 달리는 정신적인 상처를 가지게 되었고, 죄책감과 강박증, 편집증, 정신 분열 증상인 이중성 혹은 다중성을 갖게 됐다. 온전한 자신으로 인정받길 원했던 달리는 그 열망을 온갖 기행과 일탈로 표출했다.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시선을 끌었으며, 평생 천재적인 화가로 칭송받음과 동시에 괴짜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달리는 벨라스케즈, 라파엘로 등 고전화에 관심을 보였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충격을 받아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 심취하게 된다.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Napoleon’s Nose, Transformed into a Pregnant Woman, Strolling His Shadow with Melancholia amongst Original Ruins, 1945Ⓒ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살바도르 달리 재단(Fundació Gala-Salvador Dalí),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지엔씨미디어(GNC Media)가 함께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 Reality》 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살바도르 달리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3월 2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디자인전시관에서 진행되며,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세계를 10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연대기별로 소개한다. 전 생애를 걸친 유화 및 삽화, 대형 설치 작품, 영화와 애니메이션, 사진 등의 걸작 140여 점을 선보이며 다방면으로 천재적이었던 달리의 예술 여정을 조명하고 관객들에게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천재의 탄생

(1904-1926) Birth of a Genius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루냐의 소도시 피게레스에서 살바도르 달리가 탄생한다.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와 상냥한 어머니, 그리고 4살 어린 여동생과 함께 보낸 달리의 유년기는 풍요로웠다. 아름다운 해변 카다케스에 위치한 가족 별장이 있었고, 달리 가족들은 대부분의 여름을 보내곤 했다. 그 영향으로 카다케스에서의 추억과 풍경은 달리의 초기 미술 작품에 가장 친숙한 주제가 되었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서는 독특한 달리의 성격과 세계관에 영감을 준 성장배경과 고향, 가족관계 등을 살펴본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 손으로 그린 꿈 속의 사진들

(1927-1939) Surrealism: Hand-painted Dream Photographs

"나는 갈라를 아끼며 그녀를 빛나게 만들어 줄 것이고,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나 자신보다 위할 것이다. 그녀가 없다면 모든 것은 끝일 뿐이니." 살바도르 달리에게 있어 그의 영혼과 같은 '갈라'는 아주 중요한 존재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달리와 갈라의 운명적인 만남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 같았던 러브스토리가 이어진다. 달리는 꿈과 환각 속에서 완벽한 무의식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꿈에 대한 프로이트의 심리적 분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소재로 한 회화와 글은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꿈을 그리는 화가, 호안 미로(Joan Miró)에 의해 초현실주의 그룹에 소개된 달리는 1929년 말, 파리의 괴망스 갤러리에서 첫 단독전을 선보였다. 1931년에는 <기억의 지속>이란 작품과 함께 초현실주의 그룹 내에서도 독보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오랜 친구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과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를 공동 제작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발전시켜 나간다.

미국: 새로운 기회와 자유

(1940s) America:New Opportunities, New Freedom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달리는 갈라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1948년까지 8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는 1934년부터 미국에서 정기적으로 전시를 열었기 때문에 이미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이 시기의 대표작들이 소개된다. 달리의 자유분방함과 도발적인 행보, 예술적 천재성은 대중을 사로잡았고 달리의 활동 범위는 장르와 매체 구분 없이 확대되었다. 달리는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이중 이미지' 기법을 다양한 작품에 적용했는데, 대표작품으로는 <볼테르의 흉상 Bust of Voltaire>(1941) 등이 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핵과 연관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많은 작품들을 그려 나갔으며, 스페인 신비주의적 전통이 가미된 '핵-신비주의(Nuclear Mysticism)'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과학의 진보와 고전의 신비함을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녹여낸다.

나의 영원한 왕국, 포트이가트

(1950s) My Forever Kingdom, Portlligat

달리와 갈라는 1948년 미국에서의 오랜 생활을 정리하고 달리의 유년시절 추억이 담긴 포트이가트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달리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봤던 포트이가트 풍경을 미국에서 탐구한 핵과 신비주의 주제와 접목시켜 새로운 화풍을 제시한다. 또한 그는 종교적 주제와 핵융합, 핵분열과 같은 과학적 개념을 작품에 담아냈으며, 이 시기부터 마지막까지 르네상스적 전통이 흡수된 기법으로 과학과 종교에 대한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작품에 몰두한다.

시각적 환상에 대한 탐구

(1960-1970s) Optical Illusions

달리는 외적 현실과 내적 현실이 동시에 구현된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수학과 과학을 탐구하며 기존의 착시 기법을 넘어서는 실험에 몰두한다. 동시에 그는 기념비적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바로 자신의 고향 피게레스에 달리 극장-미술관(Dalí Theatre-Museum)을 설립하는 것이 었다. 1974년 개관한 달리의 극장-미술관은 그의 삶과 예술 인생을 표현하는 거대한 예술작품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초현실적 건물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중 하나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페인 피게레스의 달리 미술관에 설치된 스테레오스코피 체험 공간의 설계를 그대로 재현했으며, 착시효과를 통해 평면의 입체화를 직접 겪어볼 수 있도록 했다.

영원불멸한 거장들의 천국

(1980s) Following the Path of the Geniuses

달리의 후기 작품들은 특히 고전주의 미술의 거장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영감의 원천은 물론 그의 아내 갈라였지만 말년에는 피카소, 벨라스케즈,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에 대한 깊은 경의를 나타내는 작품들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완성한 작품들은 위대한 거장들의 유명 작품을 재해석하거나 응용하는 대신, 엄격한 전통적 회화 기법을 적용해 표현했다. 달리의 천재성과 창조성은 예술사적으로 뛰어난 화가들을 끊임없이 분석, 계승하는 동시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들며 발전해나갔다.

포스터, 작품 이미지 제공 : 지엔씨미디어<살바도르 달리전>, 전시 전경 이미지 : 임정훈